초토화되어버린 사건
남아 있는 사람은 이유 불문 학살당한 사건이 제주에서 일어났다. 일장기가 사라진 대신 태극기 대신 성조기가 올라가고 친일파가 친미로 전환하던 시절 제주도의 핫플 관덕정에는 30,000여 명의 주민이 모여들었습니다. 문제없이 집회가 끝나갈 때쯤 한 경찰이 타고 지나가는 말에 아이가 치이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무시한 채 가버리는 경찰에게 사람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죽었습니다. 경찰에 항의해 학생은 학교를 안 가고 버스도 안 다니고 공무원과 일부 경찰조차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제주도 직장 95%가 참여한 민간 합동 총파업, 미군은 그날 좌익 본거지라고 규정했습니다. 제주도는 땅이 화산섬입니다. 땅이 너무 척박해 모두가 하나같이 가난한 섬이었죠.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늘 과도한 공납에 시달였고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정기에 수난은 참담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과는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도망치듯 떠나는 섬이었습니다. 해방의 되자 뜻있는 청년들이 제주도를 제대로 살려보기 위해 자치 활동을 합니다. 해방 직후부터 미군정과 충돌했던 다른 지역과 달리 제주 지역은 원만하게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제주 4.3사건
하지만 해방 후 돌아오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역대급 대흉년이 연타를 친 가운데 미군정은 공출 제도까지 부활시켜 켜 척박한 중산간 마을에서 폐암 말과 해안 마을과 똑같은 양의 가져갑니다. 산속에서 곡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수많은 경찰과 함께 악명 높은 서북 청년단이 계속해서 제주로 내려왔습니다. 그들이 이 섬에 대해 아는 건 하나 제주 사람은 빨갱이다. 제주의 경제와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기보다는 규정하고 이용하려 들었던 존재들 그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1948년 4월 3일 새벽 남로당 무 장대가 산에서 내려와 경찰지서와 우익단체로 무장 공격했습니다.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수 탕 반대와 탄압 속에 열린 남한만의 단독선거 제주 선거구 두 곳만이 투표율 미달로 무효가 되면서 미군정과 이승만 정은 이를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섬 전체에 초토화 작전을 감행합니다. 모조리 죽였습니다. 전화도 없던 시절, 소식을 받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한 마을도 많았습니다. 젊다는 이유로 희생된 남성, 미쳐 도망치치 못했던 노약자, 여성은 총살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해안가로 자진이 내려오면 고문을 당했습니다. 평화로운 섬 제주, 실제로 딛는 발걸음 곳곳이 모두 학살터입니다. 에메랄드 빛 바다로 유명한 월정리 이곳은 군 주둔지어서 월정리에 끌려간다는 건 죽음을 의미합니다.
결론
이틀새 400여 명이 죽은 북촌리, 남자가 모조리 죽고 없어 문학촌이라 불렸습니다. 당시 제주 이구 10분의 1이 희생된 4. 3 , 빨갱이로 몰릴까 두려워 묻어 두었던 수십 년 세월 때문에 우린 아직도 4.3을 잘 모릅니다. 친일파 청산, 토지 개요, 그리고 통일, 70년 제주에서 조선을 청산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꿈꾸던 바로 그만이에요.. 왜 낯설지 않을까요?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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